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키시마호 사건 (문단 편집) == 개요 == [youtube(hcG6XN_p8T0)] [[1945년]] [[8월 22일]], 패망 이후 일본 전범 재판과 관련하여 [[강제징용]]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 하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일본 해군]]에서 징발한 4740톤급 화물선 우키시마호(浮島丸, 부도환, 우키시마마루, Ukishima Maru)에 태워 오미나토 항에서 [[부산]]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이렇게 오미나토에서 출항한 우키시마호가 돌연 방향을 돌려 일본 마이즈루 항으로 향하더니 8월 24일에 해상에서 갑자기 폭음과 함께 폭발한 사건이다. 당시 일본의 선박법은 하위규정(선박법 취급수속=船舶法取扱手続)에서 "선박 명칭에는 되도록 어미에 '마루(丸)' 자를 붙이도록" 훈시하고 있었기에 일본 민간 선박들은 ~마루라는 흔히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우키시마마루 사건이라고 불리고 대한민국에서는 우키시마호 외에도 우키시마호 폭발사건, 부도호 사건 등으로 불린다. 폭발의 원인에 대한 주장은 배에 함께 탔던 일본인 장교들이 부산에 도착했을 때 보복이 두려워 자폭했다는 한국 측 주장과 당시 [[미군]]의 명령대로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며 만내에 부설했던 미군의 기뢰와 충돌하여 침몰했다는 일본 측의 주장으로 나뉜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3883&cid=40942&categoryId=39945|#]] 일본은 당시 공식 발표를 통해 선인 승선자 3,725명, 사망자 524명, 실종자 수천여명으로 집계하였으나 현지 주민의 목격담에 따르면 사망자만 1,000명이 넘으며 당시 생존자의 목격담에 따르면 7,000명 이상이 승선하였다고 한다. 조선인 1만명이 넘게 승선하였으며 최소 5,000명이 사망했다는 자료도 있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3883&cid=40942&categoryId=3994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